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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조경 2011년 1월 <역삼동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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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은 늘 살갗이 스치는 자연이다

 

글 이재연, 윤영조 - 조경디자인 린() www.lhyn.com

사진 정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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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삼동 P씨 댁 정원

 

조경설계/시공 : 조경디자인 린()

이재연, 윤영조, 정윤호, 유충헌, 윤병철, 임정훈, 이설혜, 김은선, 김은지

건축설계 : 건축설계사무소 U.A.D

건축시공 : 기로건설()

 

 

 

도심 한복판에 있는 주택으로 마당과 중정, 옥상 정원, 오솔길 등 다채로운 풍경을 지닌 전원 같은 정원이다. 300 평의 대지에 건축면적이 150, 정원의 면적이 중정과 옥상정원까지 약 150 여 평에 이른다. 건축주는 처음부터 설계자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전문가의 손길에 맡긴다는 말씀으로 일관된 의지를 보여 주셨는데, 이를 수행하기란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디자인 관련된 사업을 하시는 분이라 건축과 인테리어에 대한 안목이 대단히 높아 매번 보고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무와 꽃에 대한 주변 이야기(예를 들면 꽃말부터 나무의 전설과 유래 등)등을 별도로 집중적인 공부를 하고난 후 보고를 했다. 공간 성격이니, 기능적이니, 경관적 접근이니 하는 딱딱한 보고형식보다 나무와 꽃에 얽힌 정보들을 이야기처럼 곁들여 들려드리니 자연스레 식물에 대한 재미와 관심, 그리고 이는 정원에 대한 지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한눈에 보이는 정원은 매력이 없다.

보는 장소에 따라 서로 다른 풍경을 연출 해 보고 싶었다.

일상의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 1층의 공간인 식당과 거실, 서재 등이 정원 쪽을 향해 배치되어 있다.

각기 다른 용도의 실내 공간에서 정원을 바라 볼 때 그 사람은 무엇을 하며 바라볼까, 창을 통해 보이는 풍경은 어떤 모습이면 좋을까, 또한 각 공간에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연출되는 모습은 전체적인 정원 풍경을 조각내는 건 아닐까...

 

식당에서 보이는 풍경은 자작나무를 열식하여 정원을 살짝 가리고 블루베리, 매화, 감나무, 앵도, 모과 등 과실수가 보이는 식재 계획을 하고 수목 사이로 좁은 오솔길을 냈다. 식당에서 자작나무 숲과 작은 오솔길이 있는 고즈넉한 풍경이 연출된다. 거실에서는 너른 잔디밭이 시원하게 보이고, 그 배경으로 식당에서 오솔길로 보이는 자작나무림과 과수들이 켜를 이루어 좁은 녹지 폭에서도 풍성한 숲의 느낌이 들게 된다. 시선의 포인트에 다간형 대형 마가목을 식재하여 봄의 꽃, 여름엔 녹음, 가을은 단풍과 열매가 시선을 끈다. 물론, 초겨울의 빨간 열매가 스산한 겨울 하늘에 운치를 더해준다.

 

주택 중앙에 계획된 중정은 거실, 복도, 서재, 주방 그리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창 등 사방으로 개방된 공간으로 보는 각도에 따라 조금씩 다른 느낌이 들도록 했다. 강자갈이 깔린 얕은 못과 구불구불한 다간형의 철쭉, 바닥엔 이끼를 깔고 작은 수조를 만들어 수생식물을 복도 창을 따라 식재하게 했다. 한낮의 볕이 철쭉의 연분홍 꽃잎위에 물결처럼 반짝이고, 밤이면 돌돌돌 흐르는 물소리와 함께 밤하늘별이 그 안으로 떨어진다. 수중의 LED 조명등이 제 몸값을 발하는 순간이다.

옥상정원은 가족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다. 원래는 마스터룸에서만 옥상으로 연결되도록 계획되어 있었는데, 두 따님의 성화로 자녀 방에서도 올라 갈 수 있도록 변경 되었다. 도시의 야경이 한 눈에 보이는 곳으로 10 여평 남짓 한 공간에 작은 사초원을 만들었다. 지리대사초, 흰갈풀, 여우꼬리그래스, 무늬새, 염주그래스 등 약 15종의 사초류와 약간의 상록 관목으로 구성하여 식재하였는데, 이 친구들이 참 재밌다. 서로가 가진 색감이며 질감이 독특하고 매력적이어서 크기와 질감을 고려하여 식재하면 근사한 사초원 하나가 뚝딱 만들어진다. 자연 그대로의 색감은 서로를 다치게 하는 법이 없다. 이질적이지 않아서 자연스런 그들끼리의 조화로움에 완성 된 후, 당시의 뿌듯함을 잊을 수가 없다. 그들 스스로 빚어내는 색과 질감의 조화가 가족들로 하여금 이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된 것이다.

 

수종의 선택에 있어 가장 중점을 두었던 점은 시간(時間)과 시간(示間)이다.

늘 곁에 있는 식물들의 미묘한 변화가 작은 감동을 일으킨다. 이른 봄, 새싹이 막 올라오기 시작할 때 깽깽이풀, 노루귀, 얼레지, 히어리가 꽃을 피우며 봄의 시작을 알리고, 꽃을 잃어 갈 즈음 주변의 관목과 초화가 비로소 연속적으로 흐드러 진다. 이러한 식물의 변화가 늦가을까지 반복 되도록 식물 구성을 하였다. 이렇게 시간(時間)이 주는 미묘한 변화와 피고 지는 사이(示間)의 수종 선정이 하루가 조금씩 다르고, 한 주가 다르며, 계절마다 색감이며 풍성함이 다르도록 계획 했다.

이 정원의 수종 구성은 교목 11, 관목 35, 초화 80종으로 계획 되었다.

 

정원은 가족사의 기록이다.

할아버지에게서 듣는 나무와 가족이야기,

이 꽃이 만발 할 때 네가 태어났단다...

나무와 함께 자라난 아이는

그 곳에서 그의 자녀에게 그 이야기를 전한다.

찰나, 또 하나의 전설이 나무에 새겨진다.

 

나무가 주름질수록 이야기는 깊어지고,

꽃망울이 굵어질수록 진한 향은 애틋함으로 남는다.

 

시간에 의해 비로소 정원이 완성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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