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조경 2017년 10월호 <그들이 설계하는 법1>
그들이 설계하는 법 10월호
이재연은 성균관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조경설계 서안(주)에 17년을 근무 후 2006년 조경디자인 린(주)를 설립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서안에 근무 당시 국내외 크고 작은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정원공사의 디테일에 매료되면서 창립 후 설계와 정원공사를 병행하고 있다. 특히 조경공사라 하지 않고 정원공사라 칭하는 것은 자체 내에서 설계하지 않은 것은 공사하지 않는다는 방침아래 경영 가능한 스케일 내의 규모만 시공하는 일을 지켜오고 있다. 그는 특별할 것 없는 학벌과 스펙에 그저 풍류를 좀 즐길 줄 아는 이 시대 흔히 보는 평범한 조경쟁이다.
설계철학, 설계 방법론이 아닌 현실적 대응에 대해
- 설계철학, 설계 방법론이란 말은 늘 나를 당황하게 해.
“당신의 설계철학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설계 방법론이라 하면 어떠한 것이 있을까요?” 설계를 전문직으로 하는 이들의 인터뷰나 글을 볼 때 자주 보이는 대사(?)이다.
난 설계 철학이 뭘까?
그놈의 ‘철학’이란 단어가 내 머리 속을 어렵게 만든다. 철학 그놈. 필자는 뇌가 그리 발달하지 못한 시절 주입식으로 교육 받을 때 ‘철학’이라는 과목을 통해 칸트와 데카르트를 배웠다. 그런데, 난 시간표처럼 정확한 삶을 살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생각하니까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어렵다. 꼭 그들이 말한 것처럼 고뇌의 산물일 것 같은 단어와 뭔가 있어 보여야 하는 글이나 말이 ‘철학’일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이토록 먹도록 아직도 철학이란 단어가 주는 무거움은 여전히 내 머리 속에 규정되어지지 않은 채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난 설계 철학이 없다. 적어도 그처럼 멋진 고뇌의 설계 산물이 없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녹녹하지 않은 작업 현실 속에서 현장과 설계, 설계와 현장을 일대일로 대응하면서 지금까지 달려 왔다. 모든 현장이 같을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설계가 다를 수밖에 없는 현실 적인 과제를 충실히 이행 하면서.
설계는 현장을 바탕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현 가능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모든 설계의 현장을 직접 가서 조사를 해야 설계가 완성된다고 주장할 수는 없지만, 허락하는 한 무조건 현장을 가서 봐야 좋은 설계가 나온다는 건 누구나 아는 상식이리라. 현장이 가지고 있는 문제가 설계의 단초이고 문제의 해결이 설계의 시작이다. 현장에 설계의 답이 있으니 현장에서 답을 찾는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설계의 반은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현장 답사를 가면 먼저 문제점을 찾고, 그 땅의 가능성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도 ‘하늘을 나는 고래’와 같은 아직도 머릿속을 말랑말랑하게 떠도는 상상의 즐거움은 간직한 채 말이다.
나의 설계 방법론은 뭘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수단이나 방법이 어찌 되었든 간에 목적만 이루면 된다.’라고 배워왔다. 부정의 의미 일까, 정말 목적만 이루면 아무런 상관없다는 긍정의 말 일까. 아마도 선조들의 삶의 철학에서 나오는 정도正道를 벗어나 교묘한 행위로 목적을 이루려는 처세에 능한 사람들을 빗댄 일침이리라. 그런데 난, 아주 어릴 적부터 좀 엉뚱하게 해석해 왔던 것 같다. 모로 가는 것을 돌아간다고 생각을 했다. ‘돌아가면서 이것저것 더 많은 것들을 보면서 가는 것이 더 좋지 않나?’ 하고 말이다. 이 속담이야 말로 설계 방법론을 설명하는 데 참 적당한 것 같다. “설계에 정답이 없다”라는 말을 주문처럼 하곤 한다. 서울 가는 길이 하나만 있을까? 우리가 하는 설계라는 것에 정도라는 것이 있을까? 그럼 대체 설계의 정도正道는 뭐지? 길로 치자면 상행 고속도로 같은 걸까? 그럼 우리는 고속도로만 이용하는 설계를 해야 하는 걸까? 교통 방송이 나온다. “지금은 막힌 곳이 없어 서울까지 두 시간이면 충분히 도착 합니다.” 문제는 이 ‘두 시간’이다. 두 시간 안에 서울을 도착해야 하기 때문에 가장 빠른 길인 고속도로를 모두가 이용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서울 가는 길에 보이는 것이 모두 모두 똑 같다. 누구에게나 설계 하는 시간을 충분히 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빠른 손놀림(?)과 신속한 판단으로 설계를 진행해야 납품 일정에 다다른다. 그렇다면 어찌하란 말인가? 뻔한 대답하나로 스스로에게 답변을 해본다. 제 시간에 도착 할 수 있는 서울 가는 많은 샛길을 찾아두자. 더 많은 다른 풍경을 보면서 갈 수 있는 자기만의 샛길을 만들어보자. 운전만 할 줄 알면 길이 아닌 곳으로 가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설계오우가 設計五友歌
- 나의 설계친구들, 플러스펜, 노랭이, 모눈종이, 빵빵이 그리고 식물도감
플러스펜
설계하는 사람이라면 유독 펜에 대한 욕심이 많을 것이다. 나도 펜을 좋아해서 많을 펜을 사고 잃어버리고 다 닳아버리고, 다시 사는 수많은 반복을 해왔다. 그래도 여러 펜 중에서 아직까지 애용하고 있는 펜은 M사의 플러스 펜이다. 이제는 유사 펜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이 펜은 일단 싸고 선의 굵기가 힘 조절로 가능한 장점이 있어서 늘 이 펜을 애용 해왔다. 물론 몇 장 그리면 끝이 닳아 뭉툭해져 잉크가 떨어지기 전이라도 펜을 바꿔야 제대로 표현이 되는 낭비적인 부분도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B 연필류 만큼은 아니어도 굵기의 조절이 자유로운 장점에 익숙해져 있어서 중간에 다른 펜으로 바꾸어 보긴 했지만 곧, 이 플러스펜의 자유로움은 손이 기억하고 있었다.
노랭이
노랭이(옐로우 스케치 페이퍼 또는 롤 페이퍼)는 비싸서 신참 때는 흰색 롤 페이퍼만 쓸 수 있었다, 노란색 위에 그리는 고참이 부러웠고 뭔가 그 종이에 그리면 그림이 더 멋지게 보이는 듯 했다. 고참들이 퇴근한 후 밤을 샐 때면 슬쩍 고참 자리의 노랭이를 자리이동 해 와서 베이스에 가볍게 밑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노랭이를 유명 여배우가 밟는 시상식 레드카펫 펴듯 촤라락 펴고 손을 깨끗이 씻고 온다. 일종의 설계 안 최종을 향한 회심의 짧은 의식이다. 그리고는 종이 안으로 파고들어 갈 듯 한 자세로 고쳐 앉고 세심하게 찬찬히 그려 간다. 혹시 남들이 이 모습을 보면 전문가 같아 보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슬쩍 양념처럼, 티비 드라마 주인공의 직업 쯤 되는 어느 장면을 떠올리며 그리고 또 그린다. 컴컴한 사무실 한 켠에 깜빡이는 스탠드 불 빛 아래서 밤 새워 장렬히 전사한 수많은 노랭이 시체들이 난지도처럼 수북이 쌓인다. 결과물은 그리 신통치 않지만 쌓인 노랭이 시체들만큼 스스로의 만족감도 수북해진다. 다만, 아무 종이에나 그려도 설계 안이 좋으면 멋지다는 걸 아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금은 손으로 그리는 사람이 현격하게 줄었다는 걸 참 안타깝게 생각한다. 어떤 경우는 캐드에서 직접 설계를 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캐드 프로그램에서 줌 아웃을 반복하다보면 전체적인 스케일 감을 잃어 공간의 스케일이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오는 엉뚱한 경우가 많이 발생하는데도 말이다. 적당한 스케일의 정지된 출력본을 놓고 자꾸 그려보는 것을 적극 권장한다. 그래야 공간의 규모, 전체적으로 통일된 스케일과 사이트 전체를 보는 힘을 설계 내내 잃지 않게 될 테니 말이다.
모눈종이, 그리드 페이퍼
모눈종이는 디테일을 그릴 때 애용한다. 캐드에 숙달되지 않은 필자로서는 아무래도 손 그림에 익숙하다. 모눈종이에 인쇄되어있는 모듈이 곧 스케일의 축소판이고 정확한 수치를 요구하는 실시설계에서는 내가 스케일을 맞추어 그려서 바로 전달하여 실시설계를 그리게 할 수 있으니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설계의 친구 중 하나이다. 또한, 선 굵기와 도면의 전체 포맷을 맞추는 것부터 디자인의 시작이라고 배웠다. 최근에는 거기까지 하면 지나친 참견이 되는 것 같아 내용에만 탈이 없으면 넘어가는 편이지만.
빵빵이
일명 빵빵이라 불렸던 탬플레이트(template)는 손으로 제도하던 시절 수목을 규격화하여 그리던 도구였다. 크고 작은 여러 개의 구멍이 빵빵(?) 나있어서 ‘빵빵이’라 불렸다. 이 도구를 그릴 때는 주의 사항이 몇 가지 있었다. 연필(샤프나 홀더)로 그릴 때는 구멍에 홈이 있는 부분이 바닥에 닿게 그리고 로트링으로 그릴 때는 구멍에 홈이 위로가게 해서 그려야 잉크가 도면에 묻지 않는다. 그리고 펜은 원 하나를 그릴 때 엄지와 중지를 이용해 손가락 마디로 거의 한 바퀴를 돌리는 신공(?)을 발휘해야하는 고난도 작업 이기도 했다. 원 한 개에 펜 한 바퀴의 신공. 그러면 동그라미 선의 굵기가 일정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이 펜 굴리기는 자를 이용한 제도에서 모든 선을 그을 때도 사용된 신공(?)이다. 글을 쓰는 동안 이제는 추억의 제도기구가 된듯하여 감회가 새롭다.
원색 한국식물도감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에 복학할 때 ‘그동안 원 없이 놀았으니 이제 제대로 전공 공부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무슨 맘이었는지 녹색 비닐표지의 「원색한국식물도감」이라는 책을 구입했다. 그러나 이 책의 구성이 한국의 자생식물 위주로 되어 있어서 식재수업 속의 수종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여, 책꽂이 구석에 꽂힌 채 존재를 잊고 지냈다. 졸업 후 설계사무실에 극적(?)으로 취업을 하게 된 필자는 90년대 초반 어느 여름 강원도 산골의 리조트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된다. 여기서 다시 이 식물도감을 꺼내게 되었다. 이 프로젝트의 설계와 시공을 함께 하게 된 필자는 당시 사무실 수장인 정영선 선생을 통해 현장이 보유하고 있는 어마어마한 자연자원을 접하게 된다. 대부분 대상지 안의 자생 식물들을 이용하여 시공을 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난감함을 겪게 되었다. 어느 놈이 잡초이고 어느 놈이 우리가 활용해야 할 수종인지 구별 할 능력이 없는 자신을 발견 했다. 자가용이 없던 필자는 수시로 고속버스를 타고 현장을 다녔다. 당시는 영동고속도로가 편도1차선인 왕복 2차선 도로로 사무실에서 현장까지 고속버스로 두 시간 반, 집에서 세 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거리였고, 그 시간을 이용해 식물도감을 책 읽듯 읽어 내려갔다. 도감이라는 책이 재밌는 책이 아니어서 처음에는 읽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그러나 현장 가서 식물을 채취하여 도감에서 찾아보고, 계속 도감을 읽으며 점점 현장 식물이 친숙하게 다가 왔다. 도감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채집식물을 보고 도감에서 금방 찾아내는 단계까지 다다랐다. 그러기를 수십, 수백번 반복되다보니 자연스럽게 식물 이름과 특성을 파악하게 되었다. 녹색표지가 닳고 떨어져 투명 비닐테이프로 몇 번이나 붙였다. 먼저 읽고 식물을 보니 대충 그 식물 이름을 도감 안의 위치를 알아 금방 찾게 된다. 조악한 인쇄, 원예종이 아닌 산과 들에서만 보이는 순수 야생종 식물 위주로 구성 된 당시에는 가지고 다닐 수 있는 몇 안 되는 도감 중 하나였다. 이런 작업은 이 프로젝트 이 후에도 반복 되었고 식물과 친해질 수 있어서 식재 설계가 두렵지 않게 되었다. 사실 조경설계를 하면서 식재설계가 가장 어려운 것은 독자나 필자나 매 한가지다. 삼십년 가까이 조경설계를 해왔으면서도 식재설계가 아직도 가장 어렵다. 참 아이러니 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조경설계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 식재설계가 가장 어렵다니.
지금은 친구에서 빠진 담배. 예전에는 정말 많이 피웠다. 전자담배로 바꾼 요즘 늘 연기를 호흡처럼 숨 쉬듯 피면서 일을 하고 있기는 하다. 이제 담배는 설계를 더 오랫동안 하기위해 피해야 할 친구가 되어버려 그냥 추억 속의 설계 친구 중 하나로 기억 하고자 한다. 나를 잘 아는 지인들은 글을 보면서 좀 의아하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오우가에서 왜 술이 빠졌나하고.
“술은 친구가 아닙니다.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