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조경 2026년 2월호 <메덩골 한국정원>
정원을 설계한다는 것
정원을 설계한다는 것은 자연을 모방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지형이 품어온 시간, 흙의 결, 물길의 기억, 그리고 그 자리에 머물러온 사람들의 흔적을 읽어내는 일이다. 처음 이 땅을 걸었을 때, 이 정원은 조형이나 프로그램을 먼저 그리는 방식이 아니라 땅과 설계자가 오랜 대화를 나누며 생성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첫 만남에서 오너는 “10년을 준비했습니다”라고 말했 다. 그 말이 단순한 의지를 넘어 한국 정원의 잃어버린 정신을 복원하고자 하는 긴 시간의 누적으로 읽혔다. 메덩골의 한국정원은 그 오랜 열망 위에서, 자연의 시간과 인간의 정신을 함께 심어가는 정원 실험의 장으로 자리 잡았다.
발견된 흐름 위에서 정원의 이야기를 짓다
메덩골의 땅은 낮은 구릉과 습지, 나대지가 뒤섞인 형태로, 뚜렷한 골짜기나 정원의 골격을 곧바로 읽어내기 어려운 장소였다. 그러나 초기 설계를 맡았던 안계동 대표(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가 지형 속 희미한 수분 흐름을 포착해내며 ‘메덩내’로 이어지는 골짜기 축을 설정한 것이 이 정원의 첫 질서가 되었다. 자연이 명확히 드러내지 않았던 흐름을 지형이 간직하고 있던 미세한 단서로부터 읽어낸 발견이었다. 이 축은 메덩골 한국정원 전체의 배치를 이끄는 결정적인 기준선이 되었다. 또한 정원을 관통하는 세 줄기, 즉 ‘민초들의 삶’, ‘선비의 풍류’, ‘한국인의 정신’이라는 서사는 이 정원의 오너가 오랜 시간 고심해 마련한 주제의 골격이었다. 나는 설계자이자 시공자로서 그 서사 위에 공간의 구조와 경험을 정교하게 구축하는 일을 맡았다. 이 땅은 과거의 흔적보다 미래의 정원이 어떻게 구성될지를 묻는 땅이었고, 오너가 제시한 이야기와 안계동 대표가 발견한 흐름은 정원을 구체화할 방향과 논리를 제공했다. 그래서 이 땅을 접한 나의 초기 질문은 “무엇을 드러낼 까?”가 아니라 “이 땅에 그 흐름과 서사가 놓일 자리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였다. 자연이 만들어놓은 골짜기가 아니라 초기 설계자가 새로 그은 질서, 오랜 흔적이 아니라 새롭게 부여된 서사가 먼저 존재했고, 나는 그 둘을 정원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메덩골의 대지는 ‘읽어내는 대상’이기보다 발견된 흐름 위에 새 이야기를 쌓아 올리는 빈 그릇 같은 존재였다. 자연의 질서를 재현하기보다 그 질서가 잠재적으로 품고 있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형상화하는 일, 이것이 메덩골 한국정원 조성의 핵심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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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원 중심부의 남도돌담길과 파청헌, 고샅, 청유원, 재예당마당
세 갈래 서사의 구조화
메덩골 한국정원의 전체 마스터플랜은 한국인의 정서와 미학을 세 갈래의 이야기로 재구성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첫째 서사인 ‘민초들의 삶’은 한국인의 마음속 깊이 자리한 집단적 기억을 풍경으로 번역하는 과정이 었다. 언덕 양쪽에 진달래, 살구, 개복숭아가 차례로 피어나도록 식재 시퀀스를 설계한 것은, 국민 동요 ‘고향의 봄’이라는 온 국민이 한 번쯤 불러 보았고 가슴에 박제된 정서를 공간적 경험으로 되살리기 위함이었다. 단순한 식재를 넘어 한국인의 DNA 속에 잠재된 감각을 깨우는 장치였다. 현장에서 나온 자연석을 사용해 쌓은 ‘남도돌담길’ 역시 풍경 장식이 아니라 삶의 태도를 되살리는 과정이었다. 영화 ‘서편제’에서 청산도 돌담길을 따라 인물들이 내려오던 장면은, 삶의 비애와 아름다움이 동시에 흐르는 풍경이었다. 그 기억은 이곳에서 ‘농부가 쌓은 것 같은’ 돌담을 요청하게 만든 감각의 근원이 되었다. 돌담은 여러 차례 허물고 다시 쌓아야 했다. 민초들의 생활의 기저가 되는 밭과 논의 풍경이 정원이 되는, 기술보다 삶의 감각이 요구되는 순간이었다. 돌담길 옆의 ‘빨래터’는 사라진 생활 문화를 복원해 공동체의 숨결을 정원 속에 다시 놓는 장치가 되었다.
둘째 서사인 ‘선비의 풍류’는 멋이 아니라 태도였다. 자연과 합일하려는 삶의 방식이며, 비움으로 충만함을 만드는 미학이다. 한옥, 담장, 연못의 시공은 강회, 황토, 목재, 자연석만을 사용하는 전통 공법으로 진행되 었다. 시멘트를 쓰지 않는 원칙은 더 많은 시간과 손길을 요구했지만, 그만큼 세월의 질감을 정원에 심어주었 다. 함소연(우주의 모든 생물이 소생한다)은 유상곡수의 전통을 담아낸 강진의 백운동 원림의 연못에서 차용해 파청헌(푸르름을 잡는 집)과 함께 확장한 공간이고, 청유원(선비의 맑은 정신과 그윽한 정취가 있는 정원)은 계절마다 꽃과 기화요초가 열리는 선비의 정원을 재해석한 장소다. 고샅은 메덩골의 설계 태도를 잘 드러내는 장면이다. 이곳의 소나무는 길과 담장을 계획할 때 장애물이 아니라 먼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주체로 의미를 부여한다. 담장은 나무의 생육을 존중하며 선형을 비켜 흐르게 했고, 그 과정은 자연을 우선하고 담장과 길이 그 흐름을 따르는 전통적 고샅의 한국적 공간성을 되살린 선택이었다. 물고기 바위(원주암)와 마당을 바라보는 방향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예술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인식 하고, 예술에 대한 존중의 마음을 담아 재예당이라 이름 붙였다. 그 마당 중앙의 원주암은 비어 있는 공간이 어떻게 충만함을 만들어내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장치 다. 한국정원 내 모든 한식 문의 이름과 정자의 주련은 조선 초 태조 이방원의 스승이었던 향토 풍류 시인 운곡 원천석(1330~미상)의 시에서 가져왔다. 한편, 프랑스 정원가 기욤 고스 드 고르 Guillaume Gosse de Gorre 가 설계한 무영원은 한국정원의 미래를 탐구하는 실험적 공간으로, 한국적 정서와 현대 조경이 만나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셋째 서사인 ‘한국인의 정신’은 정원의 가장 깊은 곳에서 시작된다. 경주 소나무 숲의 질서를 모델로 한 ‘경주 솔밭’, 선비의 기개를 바위로 번역한 ‘유생돌정원’, 병산 서원의 공간 원리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선곡서원’, 그리고 모든 서사를 고요히 수렴하는 ‘경외암(산길에서도 벗어나 있는 암자)’에 이르는 시퀀스는 한국정원의 본질을 가장 농밀하게 드러낸다. 소나무 숲을 조성할 때 필자는 사전에 직접 경주 삼릉과 흥덕왕릉의 숲을 다시 찾아가 기울기와 간격, 어긋 남의 감각을 몸으로 기억했다. 자연스러움은 계산이 아니라 감각의 기억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경험이었다. 경외암으로 향하는 길은 정원의 절정이자 퇴장으로, 침묵 속에서 정원은 비로소 사유의 공간으로 완성된다. 이곳의 식재는 깊은 숲으로 들어가는 감각을 고조시키기 위해 식재 간격을 점진적으로 좁히고, 작은 언덕과 굽은 길을 통해 공간의 깊이를 형성하며, 동시에 자연 배수가 이루어지도록 조성했다. 한편, 고로쇠나무 숲의 하부 식재는 이 장소에서 자생해 온 식물을 중심으로 구성해, 인위적 연출보다 본래의 원시 림에 가까운 풍경을 지향했다.

고향의 봄동요가 그리는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가 심긴 풍경을 연출한 정원이다.
영화 ‘서편제’에서 영감을 받아 민초들의 생활의 기저가 되는 밭과 논의 풍경을 정원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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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공동체 문화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는 서낭당과 빨래터
소나무를 피해 조성된 길과 담장이 자연에 대한 메덩골의 태도를 보여준다.
현장에서 다시 태어나는 정원, 흐름과 머묾의 조화
메덩골의 시공 과정은 단순한 공사가 아니라 장인적 실험의 연속이었다. 300년가량 된 번개 맞은 회화나 무를 200톤 크레인으로 직립 운반해 마을 어귀에 심는 과정, 400m에 이르는 메덩내 자연석 축조, 수차례 해체와 재시공을 반복한 돌담, 기욤과 함께 진행한 무영원의 실험적 정원, 고로쇠나무 숲의 생태 기반 조성, 물길의 미세 레벨 조정 등은 설계자의 도면 위에서만 완성되지 않았다. 정원은 책상이 아닌 현장에서 땅과 장인과 설계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유기적 과정이라는 사실을 메덩골 정원은 다시 한번 증명한다. 현장의 시행착오와 장인의 감각, 땅이 던지는 작은 신호들이 모두 정원을 형성한 중요한 요소였다.
메덩골 한국정원에서는 완공이 끝이 아니다. 정원은 사람의 발걸음이 닿고, 계절의 빛이 스며들고, 프로그 램에 의해 공간을 사용하며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 봄의 개복숭아 터널, 여름의 짙은 녹음의 숲, 가을의 단풍 시퀀스, 겨울의 침묵과 설경은 이 정원이 사계절을 통해 끊임없이 표정을 바꾸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특히 겨울은 메덩골 정원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시기다. “정원의 겨울은 사라지는 계절이 아니라 드러나는 계절”이라는 말처럼 잎이 사라진 자리에서 돌, 선, 지형의 본질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정원은 흐르면서 머무는 우리의 삶과 닮아 있다. 바람과 물, 꽃과 잎은 흐르 지만 고목과 바위, 그늘은 자리를 지키며 세월을 그들 몸에 쌓는다. 이 둘이 서로를 비출 때 정원은 우리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한국정원의 내일을 위해
메덩골 한국정원을 만들며 다시 배웠다. 정원은 나무와 돌을 놓는 일이 아니라 시간과 기억을 설계하는 일이 라는 것을. 한 장소의 자연과 인간의 서사를 엮어 새로운 풍경의 질서를 만드는 일은 단순한 공간 조성이 아니라 문화적 해석과 미래 상상력이 필요한 창작 행위였 다. 메덩골을 완성해 가는 과정은 한국정원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과 답을 동시에 던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한국정원은 더 이상 전통의 재현에 머물 수 없다. 우리는 자연을 대하는 태도와 공간을 바라보는 감수성을 현대적 삶의 방식 속에서 다시 정의해야 한다. 메덩골 에서 시도한 ‘민초들의 삶’, ‘선비의 풍류’, ‘한국인의 정신’이라는 세 줄기는 과거의 미학을 재조립한 것이 아니라 한국적 정원 문화를 미래로 확장시키기 위한 새로운 틀이었다. 한국인의 기억 속에 자리한 정서적 기반을 존중하되 그것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쓰는 일, 그것이 앞으로의 한국정원이 가야 할 길이라 생각한다. 정원은 시대가 변할수록 더욱 중요한 사회적 인프라가 되고 있다. 도시에서 잃어버린 자연을 회복하는 장치 이자, 세대와 문화를 잇는 매개이며, 기후 변화 속에서 인간이 자연과 관계 맺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메덩골 한국정원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국정원이 나아갈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하나의 제안이자 첫 문장이 되고자 한다. 정원은 늘 곁에 있는 자연이고 흐르면서 머무는 우리의 삶이다. 그리고그 삶의 풍경을 어떻게 설계하고 조성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계절마다 꽃과 기화요초가 열리는 선비의 정원을 재해석한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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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서원의 공간 원리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선곡서원 앞으로 선비의 기개를 바위로 번역한 유생돌정원을 펼쳐놓았다.